2022
‘태초의 인간은 아담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낙원에서 추방 당했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이 인류의 첫걸음이었고’
‘인간의 모험의 시작이었다’
‘추방은 모험의 시작이었다’
성남 城南
예술가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초등학교 1학년 말 즈음 처음 성남으로 이사 왔다.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탑마을 8단지 805동 202호. 이곳이 우리 가족과 성남 역사가 시작된 곳이며, 나의 고향, 성남, 내 기억의 시작이기도 하다.
당시 나의 세계는 탑마을과 초등학교를 포함한 야탑동 일부 지역이었다. 친구들과 뛰놀던 아파트 그늘진 주차장, 흙바닥이 넓게 깔린 공원, 탄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개천. 이 정도가 그 당시 내 세계의 전부였다. 일반적인 신도시 아이들처럼 하얀색 아파트와 푸른 하늘이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고, 지금도 유효한 기억들.
중학생이 되고 야탑동 더 안쪽으로, 지금의 야탑 3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힘든 기억과 각종 일도 많이 겪었던 시기 뒤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 성남을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은 높은 언덕과 붉은 집들이 빽빽하게 박혀있는 동네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지만. 나에게 그런 성남의 풍경은 낯설 만큼 가깝지만 먼 풍경이니까. 솔직히 성남보다는 ‘분당’이 더 친숙하고 고향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지역은 심하게 분열되어 있고 분절되어 있다. 성남에서 분당으로, 분당에서 다시 판교로. 지속해서 발전해 나아가고 있지만, 갈수록 거리감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위 말하는 신도시 아이들인 내가 겪는 이러한 이질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1990년대 1기 신도시 개발 열풍이 불며 중원구 남부지역에 분당 신도시가 생겨나며 분당구가 생겼다. 당시에는 배드타운의 대명사로 불리던 분당이 다시, 2010년대에 판교 신도시로 분리되었다. 기본적으로 분당구에 들어가긴 하지만, 분당 사람들이 성남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듯이, 판교는 분당과 다른 거리감이 있다. 성남은 이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거룩한 발전을 이루고 계층이 생겨났다.
“성남 사람들도 판교 가서 놀고, 판교, 분당 사람들도 성남 가서 노는데요?”라고 말한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당연하니까.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이동의 자유가 있으니까. 이 계층의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분명 느끼고 있다. 이동의 자유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다.
나는 불평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평등을 주장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순을, 그리고 우리의 역사가 깃든 이 도시의 모순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사회일까? 무엇을 위한 도시일까? 나는 정치인이 아니고 사회 개혁가도 아니다. 단지 한 명의 예술가이자, 이 도시에 오래 살았던 한 시민의 시선으로서 느낀 점을 예술의 언어로 풀어낼 뿐이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고 예술의 역할이니까. 해결책은 의회에서 찾아내는 거다.
어린 시절에는 어린 시절의 눈으로 보았던 것들이 어른이 되니 달리 보이더라. 구름과 조화롭게 네모난 아파트들이 지금은 하얀 돈뭉치 같아 보인다. 분명 어릴 때보다 키는 더 자랐는데 여전히 아파트는 높기만 하고 어릴 때의 꿈과 희망은 사그라든지 오래다. 그게 단지 나의 이야기일까? 나만의 이야기일까?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아닐까? 어쩌면 수많은 신도시 아이들 모두의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이야기이다. 마왕 군이 쳐들어왔거나 혹은 공주를 구하기 위해 용사의 검을 찾으러 나서는 용사의 이야기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마을 사람 A인 당신이 여정을 시작하는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이다. 마왕도, 악의 무리도 없다. 단지 상황이, 현실이 우리를 모험으로 내몰고 떠날 수밖에 없는 비참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단지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모험’의 이야기이다. 대안도 없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우리의 연대기.
나의 태초 마을은 이곳에서 출발한다. 나의 도시, 나의 반환점, 나의 고향 성남에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한 모험가로서 연대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흔히, 분당을 천당 밑에 분당이라고 표현을 한다. 천당은 과연 어딜까?
성남의 태생은 서울의 발전으로 시작되었다. 서울의 발전은 성남의 아픔이었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아픔이 이제는 전부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거대해질 수도 없이 거대해진 서울에는 약 900만 명의 시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서울의 인구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성남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경기도 인구 수는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남시의 인구 증가는 거의 두 배 정도 상승했다. 새로이 만들어지는 신도시로의 인구 유입은 필연이지만, 성남이라고 하는 도시가 더 이상 살기 힘든 도시가 된 것이 아닐까? 그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살기 힘든 도시. 그곳이 바로 성남이 되어버렸다.
서울과 엮이는 성남의 필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더 이상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 젊은 세대들의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조치가 시급하지만 계속 상승하는 물가와 부동산을 강제로 낮추는 것도 위험함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내 어린 시절, 명절 날이 되면 분당은 꽤나 조용한 유령도시가 되곤 했다. 모두 지방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느라 조용해진 이 도시를 보면 이곳이 서울의 위성도시, bed town이라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의 여파도 있지만 명절임에도 꽤나 분주한 분당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면 내가 알던 풍경이 낯설고 일상을 빼앗긴 느낌이 들곤 한다. 내가 알던 성남은, 분당은 이제 시간 속에만 존재하고 있었다.
흔히 성남의 정체성을 논할 때, 꼭 나오는 사건은 ‘광주 대단지’ 사건이다. 이 사건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광주 대단지는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및 중원구 일대를 말하며, 1960년대 서울시 철거민 대책으로, 이주 정책의 정착지였다. 당시에는 광주군 중부면이라고 불리었다. 1969년 철거민 이주가 시작되었지만 인프라가 없는 지역이었으니 대규모의 판자촌이 생겨나면서 빈민 유입이 급증하였다. 쫓겨난 주민들에게 당초 약속과는 다르게 높은 토지 대금이 부과되었다. 결국 대책 위원회는 투쟁 위원회가 되었고.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나게 된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소위 말하는 ‘젊은 세대’인 나에게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내가 본 성남은 하얀 아파트가 빽빽하고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시위라고는 본 적이 없는 ‘분당’ 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분당은 죄다 논 밭이었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어른들은 말해주었다. ‘여기 이 일대는 전부 다 논이었는데 이제는 아파트 밭이 되었다.’ 70년대에는 무계획으로 주민들을 쫓아내고 90년대에는 ‘논 밭’을 1기 신도시라는 아주 근사하고 훌륭한 계획으로 분당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논 밭’ 이었던 판교를 더 좋은 아파트와 수많은 IT 기업들이 웅장한 장소로 만들어냈다.
이제 사람들은 성남, 분당, 판교를 같은 지역이지만 서로 다르게 부르고, 다르게 인식한다. 성남, 분당, 판교를 떠올리는 이미지 또한 각각 다르다. 성남은 언덕에 붉은 집이 빽빽한 이미지. 분당은 하얀 구식 아파트가 빽빽한 이미지. 판교는 IT기업의 빌딩이 빽빽한 미래 산업 도시. 도시에 대한 인식은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법이다. 지금의 성남에 재개발 열풍이 불듯이.
동생과 나
Oil on canvas, 91*116Cm, 2020
home town
Oil on canvas, 72*60Cm, 2022
무제
Oil on canvas, 60*72Cm, 2022
마치는 글
2022년, 길고 길었던 코로나19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길고 길었던 인고의 끝 지점에서 오프라인 전시가 아니라 왜 온라인 전시냐고 물으신다면… 이것이 ‘저의 방법이 되었습니다.’ 지난 3년여 시간 동안 바뀌어버린 저의 여러분의 일상입니다. 또한 전시장의 하얀 벽이 주는 의미를 제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30년에 가까운 저의 고향, 성남에 대한 저의 생각과 감정을 반추(反芻) 하며 부감(俯瞰) 하고 싶었습니다. 오히려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다시 변곡점에 와 있습니다. 부득이하게 제 또한 인생의 변곡점에 와 있습니다.
제가 자란 성남이라는 도시를 타이틀로 하였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분당입니다. 이 낙원과 같은 신(新>神) 도시를 만든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도시를 다시 바라보는 한 모험가의 연대기를 신작으로 발표합니다. 다음은 어떤 연대기를 발표할지 모르겠으나, 수많은 만화, 애니메이션 속 용사나 혹은 모험가가 어떤 마을에서 시작하듯이, 포켓몬의 지우가 태초 마을에서 출발하듯이, 그리고 아담이 낙원에서 추방 당하여 모험을 시작하듯이, 저는 이 도시와 저의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이 전시를 끝까지 보신 분은 느끼실 겁니다. 이 연대기는 사실 우리 모두의 연대기입니다. 저와 같은 신도시 친구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청년들 혹은 타국에 있는 청년 또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또한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합니다. 전시를 마무리하며 들었던 생각은 저희 어머니 아버지 세대 또한 같은 문제를 겪었고 비슷한 다른 문제를 품고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단순히 세대 문제가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험가 여러분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모쪼록 예술의 언어로 번역된 성남과 세상에 대한 감상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